고정애 (コ・ジョンエ)

고정애当然の主張をしようと思う。韓国・日本の間で対話が必要ということだ。どうなるかは見えていると? その通り、記者としてはタブーだ。しかしこうした批判にもかかわらず書か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いや、書くしかないと痛感させられる現実をより強く意識する。
いま韓日の首脳はぎこちなく、実務者は会うのを避ける。北東アジア平和協力の一国である日本とは、平和に進むどころか、言葉さえ交わさないようだ。過去の歴史・右傾化・再武装などは大きな失望感を与える。しかし「隣国」という、外交的な相手という本質が変わるわけではない。

桓武天皇の生母が百済の武寧王の子孫であると続日本紀に記されていることに韓国とのゆかりを感じている。
    ~ 明仁天皇
我が国が過去の一時期、韓国国民に対し植民地支配により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たという歴史的事実を謙虚に受けとめ、これに対し、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を述べた。
    ~ 小渕恵三
1500年の交流史で(韓日の)仲が悪かったのは、豊臣秀吉当時の7年、明治維新後の40年など50年間ほどだ。この期間のため1500年の良い関係が損なわれるのは恥ずかしいことだ。
    ~ 金大中
友邦でない君主はあなたが常に中立で残ることを望む半面、友邦の君主は常に武器を持って支援することを願う。
    ~ 500年前のある賢人
お互いの違いを表明し、お互い耳を傾けたが、違いを克服するにはまだ不足し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
    ~ ブレント・ スコウクロフト
なぜ無駄なことをするのかという非難を受けた。それでも努力するのが外交だ。
    ~ イ・ドングァン
友人との対話は容易で、嫌な人との対話は難しいが、国家のために、必要によって対話する時はしなければいけない。
    ~ 金大中

3 thoughts on “고정애 (コ・ジョンエ)

  1. shinichi Post author

    [고정애의 시시각각] 싫은 사람과도 대화해야 한다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http://joongang.joins.com/article/377/12877377.html

     당연한 주장을 하려 한다. 한·일 간에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뻔하다고? 맞다. 기자로선 금기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도 써야 한다는, 아니 쓸 수밖에 없다고 절감케 하는 현실을 더 의식한다.

     일왕 아키히토(明仁)의 말이다. “나 자신과 관련해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續)일본기』에 적혀 있어 한국과의 연(緣)을 느낀다.” 12년 전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이다. 실제론 그보다 3년 전인 1998년에도 말했었다. 일본을 방문한 DJ(김대중 대통령)에게였다. 일왕은 만찬에서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께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다”고 한데 이어 환담에서 “교토에 도읍한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에서 온 귀화인”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 날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공동선언에서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하였다”고 말했다.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게다. 실로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일 관계 전문가들이 수시로 곱씹으면서 되돌아갔으면 하고 바라는 시기다. 좋았던 시절, 말 그대로 ‘벨 에포크’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일본의 무서움을 맛보았던 게 관계 개선 요인 중 하나일 터이다. 하지만 “1500년 교류사에서 (한·일) 사이가 나빴던 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때 7년, 메이지(明治) 유신 후 40년 등 50년 정도다. 이 기간 때문에 1500년의 좋은 관계가 손상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란 DJ의 언급에서 드러나듯, 외교적 노력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500년 전 한 현인은 “우방이 아닌 군주는 당신이 항상 중립으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반면 우방인 군주는 항상 무기를 들고 지원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500년 전에만 그랬겠는가. 오늘의 딜레마이고 미래에도 딜레마일 것이다. 가운데 낀 우리는 가장 해악(害惡)이 적은 대안을 고를 수밖에 없고 말이다. 어제의 대안이 오늘의 대안이란 보장이 없으니 탐색하고 또 탐색해야 할 터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표명했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였지만 차이를 극복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는 단계는 필수불가결하다.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군 위안부 문제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와 낯을 붉히고, 독도 방문으로 일본을 뒤집어 놓았을 때를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그런 ‘냉랭한’ 시기에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측 인사들과 물밑접촉을 했다. 이 전 수석은 “왜 쓸데없이 여기 가서 이 말을 하고 저기 가서 저 말을 하냐고 욕을 먹었다. 그래도 노력하는 게 외교”라고 말했다.

     지금 한·일 정상은 데면데면하고 실무자들은 만나길 꺼린다. 동북아평화협력을 한다는데 정작 그중 한 나라인 일본과는 평화로 나아가긴커녕 말조차 섞지 않는 듯하다. 마치 국회 특히 야당 대하듯, 북한 대하듯 한다.

     일본에 근원적 책임이 있긴 하다. 과거사·우경화·재무장 등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웃’이란, 외교적 상대란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다시 DJ의 얘기다. 2001년 그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은 ‘재앙’이었다. 부시가 DJ를 “이 사람(this man)”이라고 한 회담 말이다. DJ는 “나에게 무례했고 결국 우리 국민을 무시했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1년 뒤 만남에선 부시가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며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악의 제국’(소련)과도 대화했다”고 말했다. DJ 자신의 말을 그대로 한 거였다. DJ는 당시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친구와의 대화는 쉽고 싫은 사람과의 대화는 어렵지만 국가를 위해, 필요에 의해 대화할 때는 해야 한다.” 지금 그러고 있는가.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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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hinichi Post author

    【時視各角】嫌な人とも対話するべき(1)=韓国

    by コ・ジョンエ

    http://japanese.joins.com/article/209/177209.html?servcode=100&sectcode=140

    当然の主張をしようと思う。韓国・日本の間で対話が必要ということだ。どうなるかは見えていると? その通り、記者としてはタブーだ。しかしこうした批判にもかかわらず書か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いや、書くしかないと痛感させられる現実をより強く意識する。

    明仁天皇のことだ。「桓武天皇の生母が百済の武寧王の子孫であると続日本紀に記されていることに韓国とのゆかりを感じている」。12年前の記者会見での発言だ。実際はその3年前の1998年にも話していた。日本を訪問した金大中(キム・デジュン)大統領に対してだ。天皇は晩餐会で「一時期、我が国が朝鮮半島の人々に大きな苦しみをもたらした時代があった」と述べたのに続き、歓談で「桓武天皇の生母が百済から来た帰化人」と話した。

    その翌日には小渕恵三首相が共同宣言で「我が国が過去の一時期、韓国国民に対し植民地支配により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たという歴史的事実を謙虚に受けとめ、これに対し、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を述べた」と明らかにした。

    そのような日があったのかと思うかもしれない。実際にそういう時期があった。韓日関係の専門家が随時深く考えながら当時のように戻ればと思う。良き時代、まさに「ベル・エポック」だった。

    国際通貨基金(IMF)危機当時、日本の恐ろしさを味わったのが関係改善要因の一つだろう。しかし「1500年の交流史で(韓日の)仲が悪かったのは、豊臣秀吉当時の7年、明治維新後の40年など50年間ほどだ。この期間のため1500年の良い関係が損なわれるのは恥ずかしいことだ」という金大中元大統領の言葉にも表れているように、外交的な努力も無視するのは難しい。

    500年前、ある賢人は「友邦でない君主はあなたが常に中立で残ることを望む半面、友邦の君主は常に武器を持って支援することを願う」と述べた。500年前に限られたことだろうか。今日のジレンマであり未来にもジレンマであるはずだ。間に挟まれた韓国は最も害悪が少ない代案を選ぶしかない。昨日の代案が今日の代案という保障がないため、繰り返し悩まなければならない。この過程で「お互いの違いを表明し、お互い耳を傾けたが、違いを克服するにはまだ不足し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ブレント・ スコウクロフト元大統領安保補佐官)という段階は必須不可欠だ。

    昨年、李明博(イ・ミョンバク)前大統領が軍慰安婦問題で野田佳彦前首相に怒りを抱き、独島(ドクト、日本名・竹島)訪問で日本を騒然とさせた当時を思い出しても分かる。そのような冷え込んだ時期にも、李東官(イ・ドングァン)元青瓦台(チョンワデ、大統領府)広報首席秘書官は軍慰安婦問題を解決するため日本側の人たちと水面下で接触した。李元首席秘書官は「なぜ無駄なことをするのかという非難を受けた。それでも努力するのが外交」と述べた。

    いま韓日の首脳はぎこちなく、実務者は会うのを避ける。北東アジア平和協力の一国である日本とは、平和に進むどころか、言葉さえ交わさないようだ。あたかも国会、特に野党に対するように、北朝鮮に対するようにしている。日本に根源的な責任があるのはある。過去の歴史・右傾化・再武装などは大きな失望感を与える。しかし「隣国」という、外交的な相手という本質が変わるわけではない。

    もう一度、金大中元大統領の言葉だ。2001年に行われた金大中元大統領とブッシュ前米大統領の会談は“災難”だった。ブッシュ大統領が金元大統領を「この人(this man)」と言った会談のことだ。金元大統領は「私に無礼だったし、結局、私たちの国民を無視した」と怒りを表した。しかし1年後の会談ではブッシュ大統領が朝米対話の可能性を示唆し、「レーガン元大統領は“悪の帝国”(ソ連)とも対話した」と話した。金大統領の言葉をそのまま述べたものだった。金大統領は当時、このように説得したという。「友人との対話は容易で、嫌な人との対話は難しいが、国家のために、必要によって対話する時はしなければいけない」。今はそうしているだろうか。

    コ・ジョンエ政治国際部門次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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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hinichi Post author

    (sk)

    コ・ジョンエのような人の勇気が、両方の国の人たちを目覚めさせ、悲劇から救う。

    このようなことを新聞紙上で主張するのは、とても難しい。なかなかできることではない。

    日本の側に、例えば産経新聞社のなかに、こういうことが言える人が何人いるだろう。

    この記事をきっかけにして、「コ・ジョンエの時視各角」をいくつか読んでみた。どの記事にも、知が溢れていた。心から素晴らしい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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